룻기 1: 20 나를 마라라 부르라 Call me Mara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Don’t call me Noaomi”, she told them. “Call me Mara, because the Almighty has made my life very bitter.
오래전 베들레헴 땅에 흉년이 들게 되자 엘리멜렉 가정은 하나님이 유업으로 주시고 정착시키신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향했습니다. 나오미는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룻이라고 불리는 한 며느리와 10년만에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과거에 부유한 삶을 살던 엘리멜렉 가문의 귀향은 그곳에서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기쁨’ 또는 ‘감미로운’ 이란 뜻을 지닌 나오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슬픔’ 과 ‘괴로움’을 뜻하는 ‘마라’의 새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녀는 모압에서도 지금 현재의 삶에서도 극도의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믿음의 눈으로 그 가정을 바라보게 되면 엘리멜렉 가정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정착하도록 하신 축복 된 유업을 떠난 불 순종의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약속의 땅을 떠난 그 가정을 징계하시며 나오미의 남편과 이방 여자와 결혼한 두 아들을 데려가시며 풍족했던 삶도 (룻 1: 21. 상 반절 참조) 거두어 가셨습니다. 나오미는 그때서야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회개 가운데 결단을 내려 믿음을 고백하는 며느리 룻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나오미의 태도에서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성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 앞에서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을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는 나오미를 통해서 그분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허물과 죄와 악을 선과 사랑과 은혜로 바꾸시는 분이지요.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한 구원과 은혜의 축복 된 믿음을 떠나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이 주는 유익과 육체의 삶을 추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정말 그런 교인들이 많아요. 그런데요. 누가 되었든지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주기로 했다면 반드시 나오미 처럼 슬픔과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불평과 원망과 좌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회개와 믿음의 결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성도가 되는 삶에는 환난이 함께 하기도 하니까요. 이때 받는 환난은 연단을 이루고 소망을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게 되지요. (롬 5: 3 – 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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